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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제. 혹은 텅빔. 비우려고 노력함.

지구순례자 2011. 6. 28. 00:17



미칠듯 쏟아지는 외로움에-사실, 외로움을 느낀다기보다, 이전에 느꼈던 감정들을 떠올릴 만한 무언가가 있는 때- 술을 들이킨다.

술로 이 흐름을 부수고 싶어서일까.

아니면 이 감정과 연결된 그 예전의 버릇이 떠오르는걸까.

보통때는 술을 마시기 싫어졌음에도 불구하고, 이런 감정이 몸을 휩쌀때면 나는 술을 찾는다.

학습된 버릇의 결과인지, 내 감정의 반영인지.

적당히 술이 올라 기분이 좋아지면 쓸데없이 호탕해진 나는 그녀들의 기억을 되짚어본다.

평소에는 두려워 그녀들을 떠올릴 비슷한 무언가만 나와도 웃음을 터뜨리거나 미친듯이 화를 내는
그 기억들을 찬찬히 꺼내서 살펴본다.

그리곤, 그 기억들을 마주하곤 술잔을 기울인다.

더 이상 그 기억들에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술에 취한 말들을 읊조리며, 몇번이고 되뇌였던 그 말들을

또 다시 꺼내놓는다.

진부하기 짝이없는 쓸데없는 객기.

분명 술에서 깬 다음날 아침이면 이를 다시 후회하고 있겠지.

술에 취해 한번씩 의미없이 건드려보는 이 마음을 알까.

겁쟁이에, 맨 정신으론 떠올리기조차 두려워, 또다시 그 구렁텅이 속으로 나를 떨어뜨릴까 두려워

떠올림을 본능적으로 피하고 있는, 그러면서도 그 그리움의 흔적조차 잡고 싶어 술기운을 빌어

한번쯤 그 아픈 기억들을 떠올리는 이 마음을.

이 술기운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금 아파할 이 내 마음을 애써 무시하고

다시금 지나간 헛된 기억들만을 붙잡고 있는 이 마음을.

술이 웬수다.

그 웬수를 붙잡고서, 그 웬수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선 이 기억마저 떠올릴 자신이 없는 내가 웬수다.

완전히 잊고 싶은 이 기억이 내게 남아있는게, 이 기억을 어느새 어떤 상황에선가 무의식중에

떠올리게 되버린 내 몸이 웬수다.

이 술기운에 후회는 없다.

단지, 이 술기운을 빌어 평소 용기가 안나 회피하려 했던 내 행동들이 나올 밖에.

속은 후련하다. 비록 바보같음은 인지할지언정.

이 바보같음이 내 속에 언제까지고 꽁꽁 묶여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.



술이 다 떨어졌다.

홀로 마시는 술이기에 다른 모든것을 잊고 더욱더 침잠해가는 이 기분들을 관망하며,

-관망이라기보다, 휘둘림에 가까울 것이다.- 

나는 점점 더 올라오는 술기운을 기분좋게 받아들인다.



 병신.